
"지금 한국 사회에 대해 비판적 의식과 안목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의식과 안목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스스로 물어보기 바란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인가? 어림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어떤 특별한 계기로 해서 그때가지 갖고 있던, 제도 교육을 통해 형성되고 미디어를 통해 확인하던 의식을 스스로 반전시킴으로써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 계기는 대개 선배나 책을 통해 이루어진다. 스무 살 즈음에 배움터에서 선배나 책, 이 둘 줄 하나를 '잘못' 만나거나, 노동현장에서 선배를 '잘못' 만나 제도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의식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됨으로써 비판의식의 지평이 열렸던 것이다. 남들보다 일찍 십대에 그런 계기가 있었다면 거의 틀림없이 전교조교사를 '잘못' 만나 '불온한' 책을 소개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
홍세화, <생각의 좌표>, p.74
홍세화는 '잘못된' 선배를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그 선배들이 좋은 사회의 복음을 전파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선배를 만난, 또 한때 그런 선배였던 자신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 선배들과 후배들은 아직도 그 복음을 기억하고 있을까?
고등학교 시절, 지겨운 수업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책저책 읽는 사이, 대학에 들어가면 누구나 선후배들과 마르크스를 논하며 밤을 세우게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엘리트로서, 이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공부하기가 싫어서 재수할 생각도 않고 근처 전문대에 들어갔다.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의 차이는 단지 공부하는 기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하는 기간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꽤 큰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들 입학할 때부터 어느 정도 취직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나는 스스로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학교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과 친구들보다는 길 건너의 대학교에 다니는 R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R은 온건한 운동권 학생이었다. 사상교육도 받고 가끔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부러웠지만 행여 그것이 어떤 시샘이 될까봐, 더욱 그녀를 이해하려고 애썼고, 지지 않으려고 책을 읽기도 했다. 무슨 책을 읽어야할지 몰랐고 내용이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한 책들이 태반이었다. 그래도 이것저것 읽다가, 어떤 책에서 사회주의의 종류는 백 가지도 넘는다, 유럽의 복지제도도 사회주의가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회주의라고 하면 북한만 떠올리며 나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읽었다. 지금에야 평범한 내용이지만 당시의 내게는 새로운 지식이었고 충격에 가까웠다. 사회주의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면서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었고, R의 활동을 더욱 긍정적으로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그런데 R은 자신의 행동이나 신념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독서토론 서클에서 활동 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후배들의 토론에 가끔 갔었다. 그러다 '사회주의'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마냥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분위기라서, 사고의 방향을 다른 식으로 돌려 보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주의가 북한의 이야기만은 아니고, 그 종류만해도 다양하며 유럽 국가들도 사회주의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복지가 잘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나를 R이 저지했다. 여기서 애들에게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다시 설명하려고 하자, R은 네가 뭘 아느냐며 면박을 주었다. 불온하다는 말투였다. R은 제가 얘기한 것을 토대로 내가 생각하고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저는 대학교에서 선배들에게 사상교육을 받은 데 비해 나는 그저 전문대 학생이니 말이다. 내가 자신을 동경하고 있다고 여겼던 것 같다.
물론 내가 그녀를 동경한 것도 있다. 그녀의 학교 생활이 곧 내가 고등학교 때 기대하던 것들이니 말이다. 그런만큼 내게도 나름대로 생각의 틀이 있었다. 그녀를 이해하기는 했으나 무작정 받아들인 것은 아니고, 내 준거를 통해 받아들이고 있었다. 또 사상이란 것이 사상서에만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문학에도 그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 있고, 그런 작품들을 통해 그들의 입장이나 취지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R은 내 생각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상적인 부분에 대해 내 생각이 존재한다는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상에 대해서만은 자신이 나를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정작 자신은 사회주의를 위험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말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R의 운동권 활동도 위험한 것이란 말이 된다. R은 어린이가 부모의 눈을 피해 불장난 하듯이 호기심 반 치기 반으로 운동권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받은 사상교육은 그녀의 것이 되지 못했다. 내가 동경하는 그것이 그녀에게는 겉멋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그녀의 생각은 어떨까? TV에서 노동운동 뉴스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과연 대학교 때 선배들에게 배운 대로 여전히 생각하고 있을까?
R은 졸업하고 나서 어느 대학교의 행정조교로 취직하여 7년정도 일하다 결혼했다.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R은 육아, 교육, 부동산 등의 문제에 골몰해 있을 터이다. 아기를 낳기 전만 해도 어떻게 집을 마련해서 언제쯤 분양받은 집으로 이사가게 될 지에 대해 잔뜩 흥분해 있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일하다 학력 차별을 느끼고 다시 대학에 들어간 후, 졸업하고 나서는 가부장적이고 관료적인 회사생활에 염증이 느끼며, 이제는 지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돈도 안되는 일에 매달리고 있는 누구와는 달리 말이다.
나는 늘 비주류였고, 이해받지 못했으며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다. 특별한 주관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편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상황에 처할 때면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무력하던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자신이 비주류라거나, 약자라는 것을 깨닫고 나보다 더 열악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한번씩 생각할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 R도 그럴까?
그녀의 고민의 대상은 더이상 이 사회가 아니다. 자신의 말이 곧 주류의 입장이므로, 상대적 빈곤은 느낄지언정, 사회나 계층의 구조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내 아이에게 어떤 좋은 분유를 사줄까, 놀이방은 어디로 보내고, 유치원은 어디로, 영어는 언제부터, 집은 언제 분양받아 넓혀갈지, 그런 생활을 위해 R 부부는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권위적이고 물질만능주의인 사회에서 어떡하면 자본의 영향을 덜 받고 내 식대로 살까 고민하는 누구의 이야기는, 결혼도 안 하고 애도 낳아보지 못한 이의 철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R의 대학시절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까. 젊은날의 객기일까. 나도 한 때 그런 적이 있었다는 훈장일까. 불온해서 스릴 넘치던 활동이었으므로, 오히려 사회주의, 노동권에 대해 더욱 부정할 수 있고 냉소적일 수 있는 거부반응 일으킬 수 있는 근거일까. 이렇게 운동권 활동을 '소비'해 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홍세화의 '불온한' 선배나 동기, 후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때 운동권의 치열함이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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