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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낙타

포토로그 마이가든



공익근무는 특권계층에게 주어지는 특혜인가

 

 버스를 타고 가다가 마침 옆에서 이야기 하고 있던 모자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스무 살 쯤 되어 보이는 아들은 군 입대에 한창 관심이 많은 듯 했다. 

 

"엄마, 면접 볼 때 병역 사항에 공익이라고 적혀 있으면 면접관이 뭐라고 물어 보는 줄 알아?"
"글쎄...?"
"아버지가 무슨 일 하시느냐고 그런대."


신체 등급이 일반 군대 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어 행정관서요원으로 복무하는 공익요원이 이제는 일종의 특혜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의무를 회피하는 것이 자신의 인맥이나 재력을 과시하는 수단이 되고 있으며, 서민들은 그런 사람들의 꼼수를 비판하기는 커녕 부러워하고 있다. 이렇게 국방의 의무가 폄하된다면 누구도 현역 복무에 자부심을 가질 수 없을 것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북한과의 군사적 갈등이 점점 격해지고 있는 요즘, 국가 안보 강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고위직 사람들의 병역사항에 대한 자료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아쉽게도 그 중에는 현역을 지낸 사람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그들에 대한 처벌이나 비판은 늘 잠깐의 술렁임에 멈춰 버리고 오히려 일반 사병들의 군복무 기간 연장 계획만 떠돌고 있다. 본인도 군 복무를 하지 않았고, 그 자식들도 하지 않을 것이니 아무렇게나 군 정책을 시행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전장에서 병사 수로 밀어붙이는 시대는 지났다. 최신 무기 앞에서 인해전술은 희생자만 늘일 뿐이며 이제 인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은 군 기강일 것이다. 하지만 고위직이나 상류층들이 군 복무를 쉽게 생각하고 그 의무를 회피하려 한다면 전장에 복무하는 현역들은 자신의 처지를 부당하게 생각할 수 밖에 없고 불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런 군인들이 오랫동안 복무해봤나 군대는 강해지지 않는다.


군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병역 비리자들부터 색출하여 그에 맞는 처벌을 내려야 하며 고위직이거나 상류계층일수록 그 기준은 예리해야 한다. 또한 일반인의 인식도 변해야 한다. 군복무를 면제받거나 경감하는 사람들을 부러워 할 것이 아니라 그들부터 국방의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그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서는, 군 복무 회피를 특권으로 생각하며 절대로 그것을 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유아인의 트위터에 대한 생각

유아인의 트위터에서 이런 글이 팔로우 되어 왔다.


먼저 머리를 스치는 생각은, 바른 말 하는 건 좋은데, 이 말을 어디까지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을 보며 유아인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되었고,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발언이 젊은 배우의 치기는 아닌지, 섣부르게 멋진 놈으로 분류했다가 언젠가 부적절한 행동으로 인해 실망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갈등이 생겼다.

유아인이 말하는 mbc스페셜이란 '타블로, 스탠포드 가다' 편인 듯 하다. mbc스페셜을 검색하니 연관검색어로 떴다. 타블로 사건이, 같은 연예인인 유아인에게도 많이 와 닿았을 것이고 이에 대한 발언은 연예인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도 그것이 대범하게 여겨지는 것은 역시 그가 연예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연예인은 직업 특성 상 사람들의 이목을 많이 끌고, 언론에도 많이 노출된다. 그 과정에서 사생활이 무자비하게 파헤쳐지기도 하고 작은 일에도 신랄한 비난이 쏟아지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불리한 입장에서 트위터에서나마 제 팬들에게 이런 발언을 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소 불안하기도, 불편하기도 하다. 이것이 일회성 발언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연예인이든 누구든 세상 모든 일에 똑같이 발벗고 나설 수는 없다. 자신이 속한 곳,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되거나 어긋나는 일에 대해서만 반응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당연하다는 듯이 인식의 범위를 자신이 속한 세계에만 한정시키며 안주한다면, 그의 의견 역시 그 범주 안에서만 영향력을 갖게 된다. 유아인도 마찬가지다. 다른 일에는 관심도 없다가 연예인이 관련된 일에 대해서만 제 목소리를 낸다면 크게 공감받기 어렵다. 그저 제 밥그릇 챙기기이고, 같은 연예인을 옹호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객관적이라거나 균형있는 발언이라기보다 제 팔 안을 향한 편협한 시각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연예인의 발언은 조심스럽다. 멋진 모습으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일수록, 한 마디 말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 동요를 일으키거나 이미지가 실추되는 일이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자제하고 사람들의 환상 속으로 도피하는 연예인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실체를 가지고 이 사회에 존재하는 한, 사회의 문제와 아무 상관 없다는 듯 그들만의 세상에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배우들도 예쁘기만 한 역할보다, 현실적인 역할을 잘 소화해내어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때 실력을 인정받지 않는가. 그들의 존재가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는 증거다. 실력파 배우, 자신의 색깔이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무대 위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해서도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런 뜻에서 유아인의 발언은 긍정적이다. 적어도 자신의 생각이 있고, 남들에게 펼칠 수 있는 대범함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생각의 범위가 연예계에 한정되지 않기를 바란다. 연예인의 부당한 일에 대해 분노하고 비판한다면, 동일선상에 있는 다른 일에 대해서도 종종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소신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연예인으로서 연예계 외부 세상에 대한 관심, 참여가 그의 발언에 진정성을 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연예인의 소신발언에 대한 대중의 냉소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유아인 본인도, 팬들을 가르치려 드느냐, 네 일에나 신경써라, 하는 식의 비난을 전혀 예상하지 않는 바가 아닐 것이다. 그런 비난에 맞서 자신의 발언에 대한 진정성을 부여하는 것도 평소의 태도일 것이다. 세상을 보는 시각에 일관성이 있을 때, 그의 의견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것이고, 더 큰 의미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유아인의 트윗에,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에서 억울하게 죽은 형의 누명을 벗기겠다고 홍벽서로 활동하는 정의로운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도 같다. 이런 멋진 모습이 그저 한 때의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의 비판의식이 앞으로도 계속되어 무대와 현실에서 모두 제 색깔을 가진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오지랖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단순한 오지랖에 머물지 않도록, 자신이야말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세상 일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길 기대해 본다. 


삶의 의미 생활의 의미

사람도 동물이다. 직립보행을 하고 익힌 음식을 먹고 자동차로 이동한다고 해도 결국 먹고 배설하고 개체를 남기는 과정을 벗어날 수는 없다. 동물적 삶을 극복할 수 없으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인 듯 끊임없이 다른 동물과 차별화하는 행위는 허세 같기도 하고 자아도취 같기도 하다. 그래봐야 땅에 발 붙이고 사는 동물에 지나지 않는 것을. 동물의 한계를 벗어난 존재가 있다면 인간의 이런 시도들이 어이없고 한심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삶이 동물적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모른다. 동물의 삶과 똑같지는 않지만 인간만의 삶의 과정이 있으며 그것을 따르는 것 - 제때 배우고 일하고 결혼하며 가정을 꾸리는 - 이상의 의미를 찾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의 의미는 바로 그런 시도에 있는 것이 아닐까. 동물적 삶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나만을 위해,내 가족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더 먼 미래를 위해 희생하고 연대하는 것. 육체는 비록 땅에 붙어 있으나 정신만은 저 멀리 두어 그것을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 것. 그렇게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 추구함으로써 인간은 점차 자신만의 존재의 의미를 이룰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인류의 삶은 점점 발전하는 게 아닐까.

어떤 트라우마 극복기

 이제 트라우마를 극복한 걸까.

C에 다니면서 내가 운동권이 아니었다는 생각에 시달렸다. 모이기만 하면 기타치며 노동가요를 불러대는 그들 속에서 그 노래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나는 계속 이질감에 시달렸다.

그것은 내 어린 시절과도 연관된다. 아무 생각없이 이것저것 읽던 시절, 책에는 운동권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다. 투사의 이미지라기 보다는 이젠 끝나버린 과거의 잔해에 서서 과거를 추억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 와중에도 나는 그들에게 어떤 가치가 있고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렴풋하게나마 그들의 엘리트주의도 느꼈다.그들이 가진 생각은 뭔가 이 사회를 지배하는 생각과 방향도 다르고, 거스르며 옆에서 치고 들어와 불편하기도 했다. 그래도 너무 잘 짜여져서 오히려 무기력해전 사회에 물꼬를 틔어 주며 신선한 바람을 끌어들인달까, 정체된 사회가 나아가도록 자극한달까, 아무튼 내게는 신선했다. 물론 민중운동한다면서도 엘리트주의, 권위주의에 여전히 매여있는 그들에게 부담감도 느꼈다. 그래도 대학 가면 그들에 속해보고 싶기는 했다.

그러나 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대학에서 운동하는 친구들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했지만, 후배들 앞에서 "네가 뭘 안다고 그래?" 하는 말에 그들의 이중성을 느끼고 배신감마저 들었다. 당시에는 별일 아니라고 여겼지만, 그 일은 내가 스스로  사회정치적 관심을 끊을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다 다시 그 트라우마에 부딪힌 것은 C에 다니면서부터다. 그들이 떼창하는 노동가요를 들을 때마다 이질감을 느끼고 내 트라우마가 되살아났다.  국문과라서 사회학적 지식이 부족할 것이라는 말은, 운동을 안해봤으니 잘 모를 것이라는 말로 들렸다. 간간이 되새기는 그들의 과거의 영광, 아니 엄밀하게 말해서 그들 선배들의 영광에 나는 자꾸 위축되어 갔다. 내가 전혀 모르는 이들을 들추어가며 굵직한 의미를 부여할 때 나는 그들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에 대한 반발은 여전했다. 제대로 된 운동을 해 보지도 못했으면서 선배들의 영광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다니. 그들이 배웠다는 사회학 지식은 그저 입시생들 논술 답안을 첨삭하며 꼬투리 잡거나 아는 척 할 때나 쓰일 뿐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그들 속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깨달았다. 그들의 운동은 끝났다는 것을. 그들은 자신들의 엘리트주의로 인해 민주화 운동이 끝나자 엘리트 세계로 돌아갔다.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며 산다. 그들이 배웠던 사상은 과거의 추억이다. 그것은 일상생활로 녹아들지 못했다. 격렬한 사회운동을 하란 것이 아니다. 다만 남들보다 좀 더 배웠다면 조금은 다른 자세로 살아야할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들이 노동자라는 소외계층을 위해 싸웠다면 적어도 현실에선 주변 사람들에게 관대해야할 것이 아닌가. 자기네들끼리 민중가요나 부르기 보다는 말이다.

어쨌든 그들의 엘리트적 운동은 끝났다. 사실 이젠 엘리트들이 서민이 된 세상이다. 인문계 고등학생 대부분이 크고 작은 대학으로 진학을 한다. 이제 필요한 건 새로운 사회운동이다. 과거의 운동을 이을 필요는 없다. 그들이 사상을 생활에 실천한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생활 속에서 익숙한 생각을 낯설게 비춰주며 한쪽방향으로 곱게 뉘어진 비늘을 다른 방향으로 살짝 돌리는 정도의 실천, 일반인이 된 엘리트들의 자존심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이렇게 생각해보는 건 어때? 하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 적당히 우회적이면서도 의미를 담아, 한쪽만 바라보던 그들이 흠흠, 헛기침을 하며 조금 몸을 틀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도록 조금씩 바꾸어 가는 것, 그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모두가 엘리트가 된만큼 좀 더 세련되고 은근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 뻣뻣한 사회를 유연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의 선배는 정말 큰일을 이루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영광이 후배라는 이름만으로 전승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 껍데기만 남은 그들에게서 동경을 거두겠다. 그들과 나는 길이 다르다. 그들이 과거의 영광에서 헤어나오지 못해도 좋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그들을 떨치겠다. 내 의식을 새로운 방향으로 재정립하는 건 쉽지 않겠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것도 어렵겠지만, 어쨌거나 그들 속에서 나와야 겠다. 맴도는 것도 멈추어야 겠다. 이게 진짜 X세대 아니겠는가.


철없던 옛기억을 어른의 미소로 떠올리는 그녀

"지금 한국 사회에 대해 비판적 의식과 안목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 의식과 안목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스스로 물어보기 바란다. 학교 교육을 통해서인가? 어림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 반대다. 어떤 특별한 계기로 해서 그때가지 갖고 있던, 제도 교육을 통해 형성되고 미디어를 통해 확인하던 의식을 스스로 반전시킴으로써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 계기는 대개 선배나 책을 통해 이루어진다. 스무 살 즈음에 배움터에서 선배나 책, 이 둘 줄 하나를 '잘못' 만나거나, 노동현장에서 선배를 '잘못' 만나 제도교육과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의식에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됨으로써 비판의식의 지평이 열렸던 것이다. 남들보다 일찍 십대에 그런 계기가 있었다면 거의 틀림없이 전교조교사를 '잘못' 만나 '불온한' 책을 소개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

홍세화, <생각의 좌표>, p.74



홍세화는 '잘못된' 선배를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 그 선배들이 좋은 사회의 복음을 전파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선배를 만난, 또 한때 그런 선배였던 자신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 선배들과 후배들은 아직도 그 복음을 기억하고 있을까? 

고등학교 시절, 지겨운 수업시간을 때우기 위해 이책저책 읽는 사이, 대학에 들어가면 누구나 선후배들과 마르크스를 논하며 밤을 세우게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엘리트로서, 이 사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은 무엇이고, 그것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나는 대학에 가지 못했다. 공부하기가 싫어서 재수할 생각도 않고 근처 전문대에 들어갔다. 전문대와 4년제 대학의 차이는 단지 공부하는 기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부하는 기간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꽤 큰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들 입학할 때부터 어느 정도 취직을 염두에 두고 있었으나 나는 스스로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학교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과 친구들보다는 길 건너의 대학교에 다니는 R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R은 온건한 운동권 학생이었다. 사상교육도 받고 가끔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부러웠지만 행여 그것이 어떤 시샘이 될까봐, 더욱 그녀를 이해하려고 애썼고, 지지 않으려고 책을 읽기도 했다. 무슨 책을 읽어야할지 몰랐고 내용이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한 책들이 태반이었다. 그래도 이것저것 읽다가, 어떤 책에서 사회주의의 종류는 백 가지도 넘는다, 유럽의 복지제도도 사회주의가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회주의라고 하면 북한만 떠올리며 나쁜 것으로 간주한다는 내용을 읽었다. 지금에야 평범한 내용이지만 당시의 내게는 새로운 지식이었고 충격에 가까웠다. 사회주의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면서 시야가 탁 트이는 느낌이었고, R의 활동을 더욱 긍정적으로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그런데 R은 자신의 행동이나 신념을 특별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독서토론 서클에서 활동 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후배들의 토론에 가끔 갔었다. 그러다  '사회주의'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마냥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분위기라서, 사고의 방향을 다른 식으로 돌려 보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주의가 북한의 이야기만은 아니고, 그 종류만해도 다양하며 유럽 국가들도 사회주의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복지가 잘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나를 R이 저지했다. 여기서 애들에게 그런 얘기 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다시 설명하려고 하자, R은 네가 뭘 아느냐며 면박을 주었다. 불온하다는 말투였다. R은 제가 얘기한 것을 토대로 내가 생각하고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저는 대학교에서 선배들에게 사상교육을 받은 데 비해 나는 그저 전문대 학생이니 말이다. 내가 자신을 동경하고 있다고 여겼던 것 같다.

물론 내가 그녀를 동경한 것도 있다. 그녀의 학교 생활이 곧 내가 고등학교 때 기대하던 것들이니 말이다. 그런만큼 내게도 나름대로 생각의 틀이 있었다. 그녀를 이해하기는 했으나 무작정 받아들인 것은 아니고, 내 준거를 통해 받아들이고 있었다. 또 사상이란 것이 사상서에만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문학에도 그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 있고, 그런 작품들을 통해 그들의 입장이나 취지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R은 내 생각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상적인 부분에 대해 내 생각이 존재한다는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상에 대해서만은 자신이 나를 앞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정작 자신은 사회주의를 위험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말할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R의 운동권 활동도 위험한 것이란 말이 된다. R은 어린이가 부모의 눈을 피해 불장난 하듯이 호기심 반 치기 반으로 운동권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받은 사상교육은 그녀의 것이 되지 못했다. 내가 동경하는 그것이 그녀에게는 겉멋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그녀의 생각은 어떨까? TV에서 노동운동 뉴스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과연 대학교 때 선배들에게 배운 대로 여전히 생각하고 있을까?

R은 졸업하고 나서 어느 대학교의 행정조교로 취직하여 7년정도 일하다 결혼했다.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R은 육아, 교육, 부동산 등의 문제에 골몰해 있을 터이다. 아기를 낳기 전만 해도 어떻게 집을 마련해서 언제쯤 분양받은 집으로 이사가게 될 지에 대해 잔뜩 흥분해 있었다. 전문대를 졸업하고 일하다 학력 차별을 느끼고 다시 대학에 들어간 후, 졸업하고 나서는 가부장적이고 관료적인 회사생활에 염증이 느끼며, 이제는 지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돈도 안되는 일에 매달리고 있는 누구와는 달리 말이다.

나는 늘 비주류였고, 이해받지 못했으며 중심에서 밀려나 있었다. 특별한 주관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 편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상황에 처할 때면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무력하던 경우가 많았다. 덕분에 자신이 비주류라거나, 약자라는 것을 깨닫고 나보다 더 열악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한번씩 생각할 기회가 있었던 것 같다. R도 그럴까?

그녀의 고민의 대상은 더이상 이 사회가 아니다. 자신의 말이 곧 주류의 입장이므로, 상대적 빈곤은 느낄지언정, 사회나 계층의 구조 자체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내 아이에게 어떤 좋은 분유를 사줄까, 놀이방은 어디로 보내고, 유치원은 어디로, 영어는 언제부터, 집은 언제 분양받아 넓혀갈지, 그런 생활을 위해 R 부부는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권위적이고 물질만능주의인 사회에서 어떡하면 자본의 영향을 덜 받고 내 식대로 살까 고민하는 누구의 이야기는, 결혼도 안 하고 애도 낳아보지 못한 이의 철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R의 대학시절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까. 젊은날의 객기일까. 나도 한 때 그런 적이 있었다는 훈장일까. 불온해서 스릴 넘치던 활동이었으므로, 오히려 사회주의, 노동권에 대해 더욱 부정할 수 있고 냉소적일 수 있는 거부반응 일으킬 수 있는 근거일까. 이렇게 운동권 활동을 '소비'해 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홍세화의 '불온한' 선배나 동기, 후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때 운동권의 치열함이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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